한국가요 100년사담은 한국대중음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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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모은 음반·오디오, 한국가요 100년史 담아”
[차 한잔 나누며] 개관 2돌 경주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유충희 관장
“박물관 건립은 꿈도 꾸지 않았고 단지 음악이 좋아 30여년간 음반과 오디오를 수집했습니다.”
천년 고도 경주 보문관광단지에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을 세운 유충희(58) 관장은 17일 “취미로 모은 음반과 악보, 오디오 등 각종 자료로 처음엔 음악카페를 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음악전문가들이 박물관 건립을 강력하게 조언하면서 그는 생각을 바꿨다. 여기에 가치 있는 한국 대중음악 자료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그의 소망이 더해져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 관장은 “4∼5년 전 박물관 건립을 추진할 때 몇 군데 지방자치단체에서 ‘건물을 지어주겠다’는 제의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달콤한 유혹을 떨치고 아름답고 관광 인프라가 뛰어난 경주로 눈을 돌렸다.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접근성이 서울이나 수도권보다 떨어지고 각종 후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이었다. 그는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 없이 2015년 4월25일 보문호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박물관 문을 열었다. 개관 후 2년 동안 10만여명이 방문했다. 사설박물관치고는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유 관장은 전남 광양 진산중 2학년 때부터 대중음악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면서 많지 않은 월급을 쪼개 음반을 사 모았다. 그는 주경야독으로 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1990년에 전기설계·감리업·기술용역 사업체를 차렸다.
유 관장은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한국 대중음악사를 공부하며 희귀 음반과 대형 스피커 수집으로 폭을 넓혔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유 관장이 모은 자료는 한국 대중가요 음반 5만여장과 악보, 무대의상, 축음기, 사운드 시스템 등 모두 6만점이 훨씬 넘는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시대별로 국민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곡, 누구나 한 장쯤은 보관했을 법한 인기가요, 금지곡으로 분류돼 구하기 힘든 희귀음반 등 수많은 음반들이 깔끔하게 단장된 진열장 안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유 관장은 “1층에는 음악카페인 ‘랩소디인블루’가 꾸며져 있고 초대형 스피커가 설치돼 원하는 곡을 맘껏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박물관 지하에는 수장고와 연구공간이 있고, 야외공간에는 약 1500㎡ 규모의 데크형 공연장이 갖춰져 있다.
유 관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은 박물관 2층 전시실의 진열장으로, 지난 100년의 음악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곳에서는 대중가요의 효시로 회자하는 1925년 안기영의 ‘내 고향을 이별하고’와 박채선과 이류색이 부른 ‘이 풍진 세월(희망가)’, 1926년 윤심덕의 ‘추억’, 한국인 최초의 창작가요로 추정되는 1929년 이정숙의 ‘낙화유수’ 등의 유성기 음반을 비롯해 1958년 국내에서 처음 제작된 LP 등 시대적으로 의미 있는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음반 외에도 3층의 오디오관에서는 웨스턴 일렉트릭의 스피커 16A(WE 16A 혼), 웨스턴 일레트릭의 미로포닉 시스템, 자이스콘, 프로페셔널 오토그래프 등 진귀한 음향기기가 전시돼 있다.
아티스트들이 기증한 무대의상과 악기들도 볼거리다. 유 관장은 “남진과 이시스터즈, 이금희, 김상희, 장욱조, 조항조 등이 무대복을 기증했고 한대수와 윤연선, 이장혁, 부활의 김태원 등이 직접 연주했던 기타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동안 한국가요사를 정리한 곳이 없어 정부 차원에서 여러 차례 가요박물관 건립을 계획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위치 선정에서 내부를 채울 각종 음반들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에 걸쳐 준비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려운 작업이지만 유 관장이 혼자서 해냈다. 유 관장은 “중요한 음반자료는 거의 수집했고 창가와 민요 등 국악 관련 음반은 아직 공개 안 한 것이 많다”며 “전시공간이 모자라 소장품 6만여점 중 명음반과 희귀음반 등 3000여점을 전시하고 있는데, 앞으로 매년 한 차례 희귀 국악음반 기획전 등을 열겠다”고 밝혔다. 유 관장은 수집 음반 중 한국 최초 대중가요 자리를 두고 논쟁 중인 4개 음반(학도가, 희망가, 내 고향을 이별하고, 사의 찬미)과 ‘다정가’(多情歌), ‘반달’, ‘농타령’ 음반에 많은 애착을 보였다.
그는 3층에 전시 중인 1920∼1940년대 미국 웨스트 일렉트릭 대형 오디오를 “가히 신이 빚어낸 전설의 시스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은 외부 반출이 어려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 발전을 위해 체계적으로 대중음악사를 배울 수 있는 한국 대중음악 아카데미 등을 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천년 고도 경주 보문관광단지에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을 세운 유충희(58) 관장은 17일 “취미로 모은 음반과 악보, 오디오 등 각종 자료로 처음엔 음악카페를 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음악전문가들이 박물관 건립을 강력하게 조언하면서 그는 생각을 바꿨다. 여기에 가치 있는 한국 대중음악 자료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그의 소망이 더해져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유충희 관장이 박물관에 전시된 음반과 오디오 기기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유 관장은 전남 광양 진산중 2학년 때부터 대중음악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면서 많지 않은 월급을 쪼개 음반을 사 모았다. 그는 주경야독으로 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1990년에 전기설계·감리업·기술용역 사업체를 차렸다.
유 관장은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한국 대중음악사를 공부하며 희귀 음반과 대형 스피커 수집으로 폭을 넓혔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유 관장이 모은 자료는 한국 대중가요 음반 5만여장과 악보, 무대의상, 축음기, 사운드 시스템 등 모두 6만점이 훨씬 넘는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시대별로 국민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곡, 누구나 한 장쯤은 보관했을 법한 인기가요, 금지곡으로 분류돼 구하기 힘든 희귀음반 등 수많은 음반들이 깔끔하게 단장된 진열장 안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유 관장은 “1층에는 음악카페인 ‘랩소디인블루’가 꾸며져 있고 초대형 스피커가 설치돼 원하는 곡을 맘껏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박물관 지하에는 수장고와 연구공간이 있고, 야외공간에는 약 1500㎡ 규모의 데크형 공연장이 갖춰져 있다.
유 관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은 박물관 2층 전시실의 진열장으로, 지난 100년의 음악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곳에서는 대중가요의 효시로 회자하는 1925년 안기영의 ‘내 고향을 이별하고’와 박채선과 이류색이 부른 ‘이 풍진 세월(희망가)’, 1926년 윤심덕의 ‘추억’, 한국인 최초의 창작가요로 추정되는 1929년 이정숙의 ‘낙화유수’ 등의 유성기 음반을 비롯해 1958년 국내에서 처음 제작된 LP 등 시대적으로 의미 있는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음반 외에도 3층의 오디오관에서는 웨스턴 일렉트릭의 스피커 16A(WE 16A 혼), 웨스턴 일레트릭의 미로포닉 시스템, 자이스콘, 프로페셔널 오토그래프 등 진귀한 음향기기가 전시돼 있다.
아티스트들이 기증한 무대의상과 악기들도 볼거리다. 유 관장은 “남진과 이시스터즈, 이금희, 김상희, 장욱조, 조항조 등이 무대복을 기증했고 한대수와 윤연선, 이장혁, 부활의 김태원 등이 직접 연주했던 기타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동안 한국가요사를 정리한 곳이 없어 정부 차원에서 여러 차례 가요박물관 건립을 계획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위치 선정에서 내부를 채울 각종 음반들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에 걸쳐 준비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려운 작업이지만 유 관장이 혼자서 해냈다. 유 관장은 “중요한 음반자료는 거의 수집했고 창가와 민요 등 국악 관련 음반은 아직 공개 안 한 것이 많다”며 “전시공간이 모자라 소장품 6만여점 중 명음반과 희귀음반 등 3000여점을 전시하고 있는데, 앞으로 매년 한 차례 희귀 국악음반 기획전 등을 열겠다”고 밝혔다. 유 관장은 수집 음반 중 한국 최초 대중가요 자리를 두고 논쟁 중인 4개 음반(학도가, 희망가, 내 고향을 이별하고, 사의 찬미)과 ‘다정가’(多情歌), ‘반달’, ‘농타령’ 음반에 많은 애착을 보였다.
그는 3층에 전시 중인 1920∼1940년대 미국 웨스트 일렉트릭 대형 오디오를 “가히 신이 빚어낸 전설의 시스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은 외부 반출이 어려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 발전을 위해 체계적으로 대중음악사를 배울 수 있는 한국 대중음악 아카데미 등을 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경주=글·사진 장영태 기자 3678jy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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