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7,470


우리의 음악이야기



빗속의 여인 음악 영상(1964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세노비스 작성일19-09-05 13:48 조회286회 댓글0건

본문

d524ba772b130e21588cbb4c82df06d8_1567658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모쪼록 비피해 없으시길 바라고...

한국대중음악박물관 번영하길 바랍니다.

 

 

https://youtu.be/ALDoWCcpa7k

 

빗속의 여인

 

잊지못 할 빗속의 여인 

 

지금은 어데있나 

 

노오란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잊지 못하네 

 

다정하게 미소 지며 

 

검은 우산을 받쳐 주네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없이 걸었네 

 

잊지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못하네 

 

다정하게 미소지며 

 

검은 우산을 받쳐주네 

 

나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없이 걸었네 

 

잊지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못하네 

 

오 잊지못할 빗속의 여인 

 

나 그 여인을 잊지못하네 

 

잊지못하네 

 

오 잊지못할 빗속의 여인 

 

나 그 여인을 잊지못하네  

 

d524ba772b130e21588cbb4c82df06d8_1567658 


 

 

신중현의 생애

 

서울 명동에서 아버지 신익균과 어머니 이순자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집안이 만주로 이사했다. 당시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미용사 장사를 했다. 어릴 때는 좀 사는 집 아들이었다고 하나, 6.25 전쟁 이후 가난해져서, 부모를 잃고 막내동생도 잃었다. 남동생과 함게 전쟁고아로 자라 창고지기 등의 여러 일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한다. 당시 창고지기를 하면서 고물 라디오로 미군 방송을 온종일 들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음악에 빠지게 된다. 거의 폐품이 되어 누군가가 내다버린 기타로 연습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뮤지션의 시작이었다.

 

 

 

 

1955년 미 8군에서 연예단으로 데뷔. '히키 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 미군부대 순회 공연은 물론이고 기지촌의 클럽들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이제 막 로큰롤이라는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뮤지션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과 같은 시기다.

 

 

 

 

신중현은 사실 이때까지는 밴드의 프런트맨이라기 보다는 기타리스트로 유명했다고 한다. 실제로 신중현의 전성기 시절의 노래를 들어봐도 훌륭한 보컬리스트는 아니었고, 그래서 당시 기준으로 프런트맨으로 나서기에는 조금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 뮤지션들 사이에선 가히 넘사벽급 기타 실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그의 기타 연주가 공연장에 울려 퍼지면 미군들이 "히키 신!"을 연호하며 열광의 도가니가 펼쳐졌다고 한다.

 

 

 

동요 '반달'을 나름대로의 로큰롤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이다. 드럼의 비트나 기타의 연주가 서프 음악과 흡사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참고로 서프 음악은 1960년경 미국에서 처음 태동된 음악 스타일이고 서프 음악의 선구자격인 딕 데일이나 벤쳐스도 이 무렵에 막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참고로 위 곡은 일부 매체에서 1958년에 발표했다고 소개하고 있는 '히키-申 키타-멜로듸'에 수록되어 발표된 곡이다. 그러나 이 '히키-申 키타-멜로듸' 음반은 12인치 레코드이고 우리나라에서 12인치 음반을 제작한 것은 1964년도부터이기 때문에 1964년 이전에 발표된 곡이라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수록곡들 중 일부는 1958년 이후에 나온 외국곡들을 커버한 곡들이다. 예를 들면 밀양아리랑의 경우 1962년 발표된 Booker T & the M G 's의 Green Onions를 그대로 커버한 것. 즉, 이상의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위의 곡은 1964년 이후에 발표된 곡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1958년이라는 소개는 뭔가 착오나 오류에서 비롯되어 잘못 알려진 것이다.

 

 

 

 

1962년경 Add4를 결성하고 1964년에 1집 '빗속의 여인' 을 발매하며 데뷰했다. 이 시기는 영, 미에서도 로큰롤 밴드 결성 붐이 막 일기 시작한, 즉 록밴드 역사의 초창기였던 시절이다.

 

 

신중현은 이 Add4 때부터 본격적으로 밴드의 프런트맨이자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였다. 국내 첫 창작 록 음악인 '빗속의 여인'을 시작으로 무수한 불후의 명곡을 발표했다.

 

 

 

 

Add4는 당시 한국에 베이스 기타를 도입한 최초의 밴드 중 하나였고, 그래서 당시 쟁쟁한 로큰롤 밴드들(키보이스 등)과 더불어 새로운 록큰롤 밴드 사운드를 재빠르게 도입한 밴드로 역사에 남았다. 키보이스 같은 밴드들이 당시 서구의 최신 음악을 최대한 재현해내는 데에 집중하거나, 엔카식의 멜로디와 록을 접목하는 시도를 했다면, 신중현은 단지 서양 록음악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서양 록음악과 구별되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담은 한국화된 로큰롤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

 

 

시간이 흘러 2010년, 록의 대부라는 명칭을 붙여 신중현을 헌정하는 CF가 나오기도 했다. 노래는 신중현의 명곡 미인이다.​d524ba772b130e21588cbb4c82df06d8_1567658
d524ba772b130e21588cbb4c82df06d8_156765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